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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체 왜 싸울까? (feat. 진짜 좋은 책 추천)

lllzlllzlll 2020. 7. 26. 23:53

※ 본 콘텐츠는 로크미디어와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는 체인지그라운드에서 제작했습니다. ※

 

나는 싸우는 걸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면 큰 싸움이 싫다. 불씨가 커지기 전에 불을 황급히 끄는 게 상대방이나 나나 서로에게 좋다. 이성적인 끈을 놓으면 말싸움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왜 싸울까?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린 대체 왜 그렇게 싸우는 걸까?

 

이번에 읽은 책에 나온 이야기에 따르면 서로의 '서사'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라도 우리는 각자의 작은 울타리 안에서 살아왔다. 이 울타리는 가정, 지역, 경험 등 한 사람의 고유한 문화로, 그 사람 만의 서사가 된다. 이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갈등이 생기고 싸우게 된다.

 

동시에 같은 상황을 보고도 우리는 서로 다르게 이해할 때가 많다. 본인의 맥락에 따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누가 맞고 틀리냐의 문제가 아니지만 한번 불씨가 생기면, 지고 싶지 않다. 나의 논리로 상대를 설득시키고 싶다. 이기고 싶다.

 

역사는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 존재하는지조차도 몰랐던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하고 알아간다. 협력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때론 이별한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보기도 한다. 우리가 배웠던 세계사, 한국사는 우리가 겪는 일들처럼 미묘하고 사소한 사건들 속에서 큰 사건, 그러니까 대변혁이 일어났던 사건들의 총집합이다.

 

어려울까 봐 약간 쫄아서(?) 보기 시작했지만 생각외로 쉽고 재밌었다.

 

책을 읽을 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 가지가 있다. 지식이 쌓일 만한 내용인가? 저자는 통찰력이 있는 사람인가? 재미있는가?

이 책은 지식, 인사이트, 재미 세 가지를 모두 지녔다. 거기에 한 가지 덧붙이면, 긴 여운도 있다.

 

세계에 대한 본질적인 통찰력이 흘러넘치지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는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세계사를 담고 있다.

-린 헌트, 역사학 교수이자 <무엇이 역사인가>의 저자

 

책 한 권에 인류사 전체를 아우를 수 있을까? 놀랍게도 이 책은 가능했다.

<무엇이 역사인가>를 쓴 역사학 교수 린 헌트는 "세계에 대한 본질적인 통찰력이 흘러넘치지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는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세계사를 담고 있다."라고 했고, 위싱턴 주립 대학교 역사학 교수 찰스 웰러는 "'내러티브 중의 내러티브'를 전달한다."고 말했을 만큼 얽히고설킨 인류 문명사회를 저자 만의 스타일로 잘 풀어낸 매력적인 안내서이다.

 

저자 타밈 안사리는 무슬림 가문에서 태어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자랐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았던 점은 저자가 특정 시대나 나라에 치우지지 않게 최대한 객관적으로 썼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인이면서도 미국의 서사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대멸종을 불러 일으킨 역대급 사건이라고 말하는 미국인은 드물지 않을까? 그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살고 있던 원주민의 90%가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콜럼버스는 원주민이 살면서 남긴 그들만의 서사를 사라지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다. 명백히 그들 삶의 터전에 들어와 문화를 짓밟은 비인간적인 행동이었다고 꼬집는 부분이었다.

 

콜럼버스의 위대한 여정으로 촉발된 광범위한 전염병은 몽골족의 대침공, 흑사병, 그리고 20세기의 양차 세계대전보다 더 심각한 역사상 최악의 단일 재난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 같은 참사를 찾아 볼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대멸종이었다.


- 타밈 안사리,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역사상 최악의 단일 재난...참사...대멸종...신랄하다...

그는 노예제에 관한 생각도 솔직하게 표현했다. 당시 맥락상 인간을 노예(도구)로 삼는 것은 돈이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었지만, 아메리카의 노골적인 노예제는 후에 인종차별주의를 낳았다고 말이다.

이렇게 저자는 대단한 역사적 발견이라고 칭송하는 사건도 이면에 있는 어두운 사실(알면서도 숨기고 싶은 추악한 사실)을 함께 설명해 준다. 덕분에 그 시대의 맥락에 맞게 이해할 수 있고, 한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지지 않았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역사적 맥락을 두 개의 서사로 풀이했던 것. 저자는 '복원의 서사'와 '진보의 서사'로 나누었다.

복원의 서사란 이미 숙성된 거대 거사가 자리잡은 국가는 과거의 서사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이다. 중국에 몽골족이 나타나 원 왕조를 세울 때가 그랬고, 홍건적의 난으로 명 왕조가 세워질 때에도 그랬다. 과거에 그랬듯 세상이 다시 중국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만들겠다는 마음이 담긴 서사였다.

진보의 서사란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전진하는 것이다. 14세기 유럽인들은 발견에 매료되었다. 그들은 변화를 좋아했다. 그들의 주요 과제는 혁신이었고, 파열은 혁신을 위한 모험이었다.

 

이렇게 두 가지의 서사로 보면, 그 커다란 중국이 왜 한때 열강세력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지, 왜 식민지화에 그렇게 박차를 가했는지, 왜 산업발달은 유럽이 단초가 되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내가 이 책을 중2 때 세계사를 배울 당시에 만났더라면, 내 세계사 시험점수가 그렇게까지 되진 않았을텐데...

 

앞에서 '우리는 왜 싸우는가?'에 대해 서로 각자의 서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유를 알았으니,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싸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의 서사를 맥락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이 관계 발전의 한 걸음이 됐든 인생 경험의 한 걸음이 됐든, 나에게 도움이 되는 길임에는 틀림없다.

 

저자 타밈 안사리는 이 책에서 5만 년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제일 마지막 장에 써 두었다. 너무 멋진 말이라서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우리의 목표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지도로 세계 곳곳에서 각자의 길을 찾는 것이다."

- 타밈 안사리,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최고의 한 줄.

 

역사라는 세상을 항상 어려워했던, 세상 물정 모르는 나에게 이 책은 역사의 눈을 뜨게 해 준 가이드북이다. 이제 역사 앞에 쫄지 않게 되었다. 엄청난 수확이다. 다음에 읽을 역사책은 <사피엔스>와 <총균쇠>가 될 것이다.

 

끝으로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에서 뽑은 명문장을 소개하고 글을 마친다.

 

1. 불필요해진 서사는 걸어 다니는 시체나 다름없는 법이다. 서사의 생명력은 정확성이 아니라, 적합성이 의심받는 순간부터 약해지기 시작한다.

2.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외의 모든 사람과 동일한 세계를 상상하는 능력을 갖춘다는 것을 의미했다.

3. 하나의 돌파구가 또 다른 돌파구로 이어지는 법이다.

4. 역사를 다룰 때는 인과관계를 논하기보다 파급효과를 염두에 두는 편이 낫다.

5. 가정은 주택이 아니라 세계였다.

6. 역사를 숙고하고 과거에 주목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쨌든 현재는 미래에 존재할 과거일 뿐이다.

7. 우리의 목표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지도로 세계 곳곳에서 각자의 길을 찾는 것이다.


8. 인종은 생물학적 사실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물이다.


9. 우리가 기기를 열심히 인간화하는 동안에도 기기는 우리를 열심히 디지털화하고 있었다.

 
10. 도구와 기계는 구별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해보기 바란다. 도구는 인간의 작업을 도와준다. 기계는 직접 작업을 처리한다.


- 타밈 안사리,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 교보문고

체스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놀이다. 하지만 6세기에는 체스의 발상지인 인도에서만 즐기던 놀이였다. 체스의 원조 차투랑가는 인도에서 페르시아에 전파되어 샤트란지가 되었고 중세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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